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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들어, 이직을 한다든가 유튜버를 한다든가, 박사과정을 시작한다 같은 나 자신의 예상을 깨고 나는 다니던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을 성공했다. 나도 참 나를 모르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사회생활을 못해’ 같은 편견이 있어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까지도 작년에 다니던 회사를 착실히 다니고 있다. 회사 사람들과 점심시간에 일 외의 다른 이야기를 할 때면 좀 삐걱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여전히 ‘나는 사회생활을 못해…’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일할 때에는 문제 없으니 뭐 괜찮지 않나 하면서 살고 있다.

무슨 회사?

제조 관련 회사고 대기업 안의 CIC 다. CIC 라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고 나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Company In Company 의 약자이다. 이런 특이한 구조라서 그런지 다니다 보면 이런 느낌이 든다.

대기업 향 1% 첨가된 중소기업

그리고 나는 이러한 우리 회사의 특징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복지는 대기업인데, 업무의 유연함은 중소기업이다. 나의 목소리가 굉장히 쉽게 사장님께 닿는단 것도 좋은 점. 게다가 뭐, 모든 회사들이 그렇겠지만 우리 회사는 외주를 주기 보다는 내부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말 많은 업무들에 관여해 볼 수 있었고, 돌아보면 2022년은 정말 많이 배우는 한 해였던 것 같다.

다만 연말이 되어서 회사에서도 전체적으로 마무리하는 분위기가 있기도 하고, 12월 들어 개인적으로도 좀 나태했기 때문에 가끔 내가 한 일이 없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좀 힘을 내기 위해 이 포스팅을 써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배웠나

1. Computer Vision Tasks

이전에 다니던 스타트업에서 했던 건 시계열 예측과 자연어 처리였기 때문에 작년의 나는 컴퓨터 비전 쪽은 완전히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요새는 웬만한 딥러닝, 머신러닝 부트캠프들은 모두 컴퓨터 비전을 다루기 때문에 ‘한번도 안해본 사람’ 타이틀은 좀 귀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게 나라는 점이 조금 부끄러웠달까? 그래서 연초에 팀장님과 면담을 할 때 컴퓨터 비전쪽을 다뤄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1년 내내 컴퓨터 비전으로 고통받을 수 있었다.

1.1 OCR 을 위한 이미지 처리로 시작했다

요새 OCR 모델들이 워낙 성능이 좋아서 이미지를 크게 처리하지 않아도 정확도가 꽤 높다지만, 문제는 현업에서 사용하려면 그 정도 정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비용절감을 위해 오픈소스 모델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문서들의 퀄리티는 들쑥날쑥했고, 나는 ‘대체로 잘 작동하는’ OCR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이미지 처리 방식을 고민해야했다.

  • open-cv 의 대략적인 사용법을 익혔다.
  • blurring 기법들의 차이점을 배웠다.
  • thresholding 기법들의 차이점을 배웠다.
  • dilate, erode, morphological transformation 의 원리를 배웠다.
  • homography 연산에 대해 배웠다.

배운 것들을 토대로 문서 이미지를 OCR 하기 좋도록 정돈하는 파이프라인을 만들었고, 이를 적용한 시스템을 자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꽤 잘 작동하고 있는 듯 하다. 이걸로 전사 Tech Summit 에서 비공개 세션으로 발표를 하기도 했다.

1.2 연기도 인식해봤다 (…)

연기 인식은 정말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그걸 저한테 시키시다뇨. 저는 응애라서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에요. 근데 사람 마음이 그렇다. 어려운 걸 시키면 괜히 두근거리는… 그런…. (나만 그럴 수도) 다만, 거의 불가능한 과제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학습 데이터가 굉장히 부족했고, 연기는 반투명하고, CCTV 의 화질은 참담했고, 겨우 받아낸 GPU는 너무 후졌으며, 이 과제의 실무는 오로지 나 혼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 말씀드리기를,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었지만 ‘그래도 시도 해보라’는 대답 덕분에 나는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만든 모델이 연기의 시작 지점은 그래도 잘 포착해내서 그래도 뭐, 이런 상황 치고는 나름 잘 해냈다고 자부하는 과제이다. 연기 인식에 대한 논문을 왕창 읽었지만 나처럼 열악한 상태에서 해냈던 논문은 없더라…..

  • Background Subtraction 에 대해 배웠다.
  • Optical Flow 에 대해 배웠다.
  • Classification을 위한 CNN 모델을 pytorch 로 구현하였다.

1.3 까다로운 Object Detection 도 시도해봤다

이건 우리 회사 과제는 아니었고 전사 AI 대회 주제였다. 통신탑 사진에서 나사를 인식하고 분류하는 게 목표였는데 꽤 까다로웠다. Object Detection은 또 처음이라 이것저것 배우고, 시도해보았지만 타사 AI 조직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고… 귀여운 등수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즐겁고 소중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내년에도 대회가 열리면 꼭 다시 출전할 생각이다.

  • YOLOv5 를 사용해보았다.
  • Object Detection 의 평가지표에 대해 배웠다.
  • 1등 팀의 발표를 듣고 그들이 흘린(?) 빵가루를 주워먹어봤다.

    • object detection 에도 ensemble 기법이 있다는 것을 배우고 혼자 열심히 찾아봤다.
    • 각종 object detection model 의 존재에 대해 알았다. (swin transformer 신기하다!)

2. Staff 조직의 애환 들여다보기

작년에는 엔지니어 분들과 소통하며 공정 데이터 분석을 했었다면 올해는 HR, 경영관리 등 Staff 조직들과 협업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만난 DT과제 담당자들은 모두 너무 바빴다. 게다가 그들은 DT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보였다. 아마 바빠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엔지니어 분들과 소통할 때와 비교해보면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 분들과도 어찌저찌 올해 과제도 해냈다는 게 다행인 점이다. Staff 조직과 일하면서는 회사생활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2.1 자동화 못한다니까요?

분명 자동화를 할 수 있는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이 업무는 자동화가 불가능한 업무라는 깊은 믿음을 가지고 계신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제는 사장님이 지켜보고 계신 과제였고, 그래서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바쁜데다 마음이 닫혀계신 실무자를 붙들고 과제를 하기는 너무나도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10월 쯤인가 과제를 홀딩해버리면서 약간 우울했다.

그러나 과제를 더는 미룰 수는 없는 지경에 왔고, 우리는 억지로 미팅을 잡았다. 나는 대충 해버릴 요량으로 정말 대충 해서 결과물을 내버렸다. 한 3일 걸렸나. 근데 웬걸 되게 마음에 들어하셨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열리신 것 같았다!

아마 그들이 원한 건 예쁜 프로그램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빨리 나오는 것이 다였던 것 같다. 실무자 분이 이렇게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좀 기분이 나아졌다. 하지만 그는 내년에도 너무 바빠서 DT과제를 맡지 못하실 것 같다고 한다. 내년에 나는 누구와 일하게 될 것인가…..

2.2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거냐니까요?

그래, 없었다. 왜냐하면 그쪽에서 준 데이터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정도로 많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EDA 만 해서 줬다. 내가 통계학 석사라고 거기서 통계적 의미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보안상의 이유로 많은 데이터가 가려져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나와 어떤 사람 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조직 내부 소통 문제였다. 한 명은 ‘눈으로 보이면 그게 맞다’ 고 생각해서 내가 송부한 ‘초안’을 그대로 보고로 올려버렸고, 한 명은 통계를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고 하는 상황이었다. 딱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짝이었다. 난 정규직으로서는 0년차 응애였고 그 둘을 모두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여기서 내가 잘못했던 건 이 조직에 대해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하지 않은’ 초안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 내가 한 일의 방향성을 확인하기 위해 일을 90% 정도만 하고 남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하곤 한다. 보통은 이 90% 짜리 결과물을 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자세히 피드백을 주시는데 이 분들은 내가 한 것을 100% 로 본 것이 문제였다. 이 일을 계기로 굉장히 반성했고 다음에 이 조직과 일할 때는, 일을 120% 정도 해가서 내용을 쳐내는 방식으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의 것들…

연초에 정규직 전환이 된 우리 팀원들은 나를 포함해서 총 4명이었다. 그 이후로 정말 회사생활같은 걸 가끔 했다(?). 예를 들어 회식에 참석한다든가, 팀 워크샵에 참석한다든가 뭐 그런 것들.

사실 회사 다니기 전에는 이런 ‘회사생활’ 이 되게 의미가 없고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또 그런 건 아니더라. 어쨌든 하루의 9시간, 야근을 한다면 그 이상을 머무르는 곳의 사람들과 일 외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일을 할 때에도 마음가짐을 좀 덜 포멀하게 가질 수 있게 하는, 그래서 편안함에서 오는 효율성을 바라는 어떤 의식(ritual)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이런 단체 생활이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건 내 성향이니까 감내해야지 어쩌겠는가. 우리 팀 특성상 이런 자리가 많지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엔.

회사 밖에서 한 일

작년까지만 해도 주로 하는 일 외적으로 개인 프로젝트를 많이 했었는데, 요새는 참 그게 쉽지가 않다. 정규직의 무게란 이런 것일까? 그래도 매사 뭔갈 하려고 노력은 한 한 해였다.

1. 자연어처리 프로젝트

좋은 기회가 닿아서 어떤 앱의 자연어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다. 물론 무상이다. 왜냐하면 겸직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분석을 하고 싶지만 본격적으로 데이터 분석가를 초빙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은 대표의 니즈와 괜히 업무 관련한 부분에서 남을 도와주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같은 나의 니즈가 잘 겹쳐서 성사된 만남인 것이다. 게다가 급한 일도 아니라니 심심할 때만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간단한 감정 분류 모델링을 해놨고, 지금은 챗봇 쪽을 스터디하고 있다. 힘 안들이고 하고 있어서 재미있다.

2. 책 읽기

책을… 읽긴 하는데, 항상 슥 훑어보기만 한다. 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문제인 것 같다.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그래도 대충이라도 읽은 책들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다. 은근 회사랑 관련이 많은 책 리스트라 쓰다보니 좀 킹받는다.

  • 파이썬 클린코드
  • 가볍게 읽는 기초화학, 가볍게 읽는 무기화학 (본인은 문과라 하나도 안 가벼웠다)
  • 한눈에 보는 실전 재무제표 (이건 경영관리랑 협업하기 전에 복습 차원에서…)
  • 회사의 언어
  • 1일 1로그 100일 완성 IT 지식 (재미있고 간결해서 좋다)

2023년에는…

돌이켜보면 확실히 팀장님 면담할 때 말씀드렸던 것들이 착실히 이행된 한 해였기 때문에, 아마 이번에도 면담 때 뭘 하고 싶다고 말할 지가 관건일 것 같다.

최근 느낀 것은, AI/DL 쪽에는 이미 뛰어나신 분들이 너무 많고 이걸 내가 따라가기에는 쉽지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EDA와 회귀분석을 붙들고 있기에는 너무 대체되기 쉬운 인력으로 느껴지고.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가 지금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 그래서 세상이 나를 계속 필요로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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