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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 전에 퇴사 및 이직을 했다고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나는 두번째 퇴사와 이직을 했다.

이 글도 마찬가지로, 내가 기억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재작년 3월에 나는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그래도 소위 대기업 계열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그 해 말에 나는 정규직 전환이 되어 정규직으로는 사실상 1년 반 동안 대기업에 다녔다. 스타트업을 다녀서 답답하고 짜증나는 것인 줄 알았으나, 당연하게도 대기업에서도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딱히 뭐가 답답했는지 여기 낱낱이 고할 생각은 없다. 좋은 기억이 더 많기 때문이고, 그 기억들만 가지고 가고 싶기 때문이다.

입사 초반과 정규직 전환 후 1년간의 내용은 다른 글에 적어두어 생략한다. 2021년 당시 퇴사 글을 적던 나와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달라졌는가를 중심으로 작성할 예정이다.

당시에는 나 자신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고 부르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었다. 지금은? 지금은 링크드인에 내 직함을 당당히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고 적어놨다.ㅋㅋㅋ 내가 정말 나 자신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고 인정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면피가 두꺼워진 것인지 헷갈리긴 한다. 다만 ‘이 정도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맞는듯…’ 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회사 안에서 데이터 정제, 분석, 모델링, 보고서 작성, 보고, 교육 등등을 전부 해봤고, 그걸 이용한 프로젝트들의 성과가 측정되어 나의 성과가 되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직한 회사에서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직함을 달고 있는데, 이제 이거 가지고 부담스럽지는 않다. 뭔가 Fancy 한 기술을 쓸 줄 안다고 해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적재적소에 데이터를 활용하는 파이프라인을 만들 줄 안다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닐수도 있음 주의)

처음 들어갔던 스타트업과 달리, 다니던 회사에는 사수가 있기는 했다. 보통 사수라 함은 내가 대리급이라면 아마 과장, 차장급이 사수가 될텐데, 나는 내 바로 위에 팀장님(부장급)이 계셨다… 다들 이런 얘길 들으면 힘들겠다고 반응하지만 사실은 너무 좋은 분이셨다. 아마 내가 나중에 다른 대기업을 가더라도 그런 분은 만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적으로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나같은 경우에는 공감능력이라든가 인간 감수성(?)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실제 예시를 보지 않고서는 좋은 행동이 뭔지 잘 모르곤 하는데, 팀장님 밑에서 일해서 이런 걸 미리 배울 정말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했다. 지금에라도 기억나는 ‘배울 점’들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업무의 본질을 잊지 않고, 이를 부하 직원들에게도 항상 상기시켜줌으로써 동기부여를 해 주었다. 팀원을 동기부여해주시는 방법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 팀원이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고 느껴지도록 말해주기. 의외로 이게 진짜 일 열심히 하게 되더라. (회사가 날 믿고 있어…!)
    • 나 혼자 멋진 데이터 분석가가 아니라 타 팀을 빛내주는 서포터로서 일하도록 독려하기
    • 경영진들의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이를 팀원에게 납득가도록 설명해주기
  2. 팀장은 분명 힘든 자리였는데 이를 절대 남들에게 티내거나 생색내지 않았다.
  3. 프로젝트의 성공을 최대한 부하 직원의 공으로 돌렸다. 나는 그저 대리급이었을 뿐인데, 사장님 보고 들어가서 직접 발표한 횟수 몇번인지 세지도 못할 정도로 많았다. 발표하고 나서 사장님께 칭찬 직접 들으면 일주일 내내 기분이 좋았다.
  4.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잘 활용하시는 것 같았다.
  5. 팀원들의 장,단점도 정확히 파악하고, 팀원 개개인이 희망하는 성장 방향성도 취합하신 뒤에 업무 분배를 이에 맞게 해주셨다.

어쩌다 여기로 흘러들어와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왜 이런 좋은 팀장님이 계신데다가 안정적인 회사를 퇴사하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아무래도 회사가 가스 제조 회사다보니 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종류가 한정적이었다. 2년 넘게 다니다보니 이제 했던 프로젝트를 확산 전개하거나 유사한 프로젝트들만 나오는데, ChatGPT 가 등장하며 이런 반복적인 업무만 하다가는 그대로 대체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게다가 회사를 다니다보니 DT 인프라 부분이 아무래도 아쉬웠는데, 인프라 투자가 왜 필요하냐는 경영진들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도 그냥 아쉬운 거지 뭐가 얼마나 더 좋아진다거나, 이러이러해서 필요하다든가 하는 이유를 생각하기는 쉽지가 않더라. 결국 내 경험이 너무 모자라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더 다양한 걸 해보고 싶었고, 더 범위가 넓은 걸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스타트업으로 간다. 이전의 2022년 회고 글에서 ‘회사 밖에서 한 일’ 중 자연어처리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는 팀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합류하게 됐다! 다시 사수는 없고, 내 사수는 또 다시 인터넷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약간의 자신감이 있다. 2년 전, 화상면접에서 ‘여기선 배울 게 많을 거예요, 그건 확실해요’ 라고 단언하셨던 것처럼 정말 나는 그새 꽤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건 데이터 사이언스의 이론을 많이 배웠다는 말이 아니라, 나의 업무를 대하는 자세라든가 세상 사람들이 데이터 관련 업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와 같은 것들을 많이 배웠다는 뜻이다. 어딜 가나 이론 공부나 기술 공부는 알아서 해야한다.

아무튼 뭐, 그렇다. 정말 좋은 회사였고 많은 고민 끝에 퇴사하게 되었다. 새로 들어가게 된 곳에 대한 기대는 딱히 없다. 나에 대한 기대는 있다. 여기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벌써 아주 산더미이기 때문이다. 인생사 새옹지마고 뭘 했든 깨달은 게 많으면 그만이다. 다시 한번 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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