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이직
이것은 그냥 내가 기억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작년 7월 말에 작은 스타트업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퇴사했다. 계약직이지만, 나름 대기업으로 이직한다! 내일 대학원 졸업장을 받으니 나는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이직하는 셈이다.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답답하고 짜증날 때도 있었지만, 내 우당탕탕 첫 직장생활(?)이 오늘로 막을 내린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괜히 싱숭생숭하고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쓰는 퇴사썰인 것이다.
입사 당시에 나는 개발팀 소속 연구원이었다. 개발팀 회의에 참석하고, 개발팀 분들과 이야기를 해왔다. 개발팀 사무실 구석의 내 자리에서 나는 혼자 데이터 분석 업무를 했다. 그런데 11월에 데이터 분석을 하고자 하는 분이 한명 더 입사하신 뒤로 ‘데이터팀’ 이 새로 꾸려져 나는 팀을 옮기게 됐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데이터사이언티스트 직함을 달게 됐다.
먼저 이 직함이 문제인데, 나는 사실 엄청 오그라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정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분들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고 불리우기에는 정말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친구들의 발끝이라도 따라가기 위해 허덕거려야 했고, 그러다 척척석사로 마무리해버렸고, 실무 경력은 없고, 여기저기서 가져온 소스코드를 누더기처럼 기운 괴기망측한 코드로 모델을 돌려왔는데,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니. 이런 나에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는 직함을 달아놓고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게 엄청나게 죄책감이 들고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불리우게 된 날부터 격렬하게 이직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클린 코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누더기를 기우더라도 좀 예쁘게 기우고 싶어서…)
게다가 이 회사에는 날 가르칠 시니어가 없었다. CTO 도 없었고, 팀장은 나와 완전히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일하는 동안 내 시니어는 스택오버플로우와 깃헙이었다. 물론 이 사실은 미리 알고 입사했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것인 줄은 겪기 전엔 몰랐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완전히 백지에서부터 시작했는데, 내가 실무 경험이 없다보니 엄청나게 천천히 진행됐다. 입사하고 첫 2주 간은 그 어떤 코딩도 하지 못하고 프로젝트 관련 논문들과 글들을 잔뜩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서는 모든 코드를 그냥 하나의 쥬피터 노트북에 전부 써 내려갔다. 대학원 과제나 작은 공모전 같은 건 그 정도 코드면 적당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모델의 버전 관리도 엉망진창이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 이런 부분을 개선하는 데에 시간이 엄청나게 걸렸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나중에 내가 알아채고 나서야 고쳐지는 식이었다. 하나의 실수를 발견하던 날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거 말고도 다른 실수가 있는게 아닐까, 그걸 내가 모를 뿐인 거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점점 복잡해지자 나보다 잘하는 누군가가 제발 나에게 고나리질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결국 나는 나를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 부르지 않고, 시니어가 있는 곳으로 간다. 다른 조건들도 물론 다 마음에 들었지만 그 두 가지가 가장 크다. 면접을 볼 때 이직 이유를 묻길래 ‘시니어가 없는 게 힘들었습니다. 더 잘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라고 답했는데, 면접관 한 분이 ‘여기선 배울 게 많을 거예요. 그건 확실해요.’ 라고 말씀하신 것에 엄청난 기대를 걸고 있다.
물론 다녔던 회사에서도 배운 건 정말 많았다. 수많은 비전공자들과 소통하면서 학교에서와는 다른 시각으로 나의 직무를 바라보게 되었다. 분석 결과물 사용자의 입장에서 어떤 데이터 분석 방법이 필요할 지 고민했고, 나중에 다른 사람이 내 코드를 봤을 때 수정이 쉽도록 하려면 어떻게 코드를 짜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회사 IR 자료 일부를 작성하면서 VC들이 어떤 질문을 할지 생각할 기회도 있었다. 분석 과정을 서비스에 탑재하기 위해 AWS를 이용한 자동화 파이프라인을 구상하고 구현을 위한 코드도 작성해보기도 했다. 혼자 고민한다고 머리 깨지는 줄 알았는데 아무도 제대로 이해해주지 않아 조금은 슬펐지만, 여기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깊게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뭐, 그렇다. 퇴사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새로 들어가게 된 곳도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 있겠지. 인생사 새옹지마고 뭘 했든 깨달은 게 많으면 그만이다. 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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